한때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신문 소설에서 등장 인물의 이름이 장총찬, 권총찬이 있었다. 그 이름이 총을 의미한다고 해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신군부의 압력에 의해 주인공의 이름이 바뀌는 촌극 아닌 촌극이 벌어졌다. 소설은 허구인데도 마치 사실의 기록처럼 인식하는 몰지각한 권력의 횡포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작금에 일어나는 현상들이 방법론만 달랐지 고도로 지능화 되어가는 양상에 혀를 내 두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라는 것은 국민을 바르게 다스리라는 뜻인데 바르게 다스리기는커녕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든 옭아 메어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의 기나긴 싸움이 끝이 났는가 쉽더니 또다시 떠오르는,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 당시 법무부 차관의 출국은 핫이슈가 되었고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데 성공한 셈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신천지 총회장도 신도수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전격 구속을 하더니 결국, 법원의 판결이 무혐의로 나왔다. 그 당시에도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그 진의를 의심했지만 각 언론매체와 정치집단들이 꼭두각시가 되어 여론 몰이로 바람을 일으켰고 아주 나쁜 종교집단으로 매도하였다. 그것으로 인해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유린되었고 신천지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에게까지 최악의 집단으로 각인 되어 억울한 누명을 썼지만 현명한 법원은 간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들은 질타하는 것은 특정 종교나 특정인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동치는 정치의 술수가 보여지는 것 같아 속이 매스껍다. 어떻게 하면 국면 전환을 할까, 잔재주, 잔머리에 익숙해 있고 진정성 있는 의혹의 해소나 궁금증은 풀어주지 않고 당면한 사건이 생기면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 ,이용해 볼까에 대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슈화 한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파탄이 일어나고 생존에 몸부림치는 대다수의 국민에게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선심을 쓰듯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도 볼썽사납다.

문학창작의 작법 중에 ‘퍼소나’라는 것이 있다. ‘퍼소나’는 탈, 가면이라는 뜻이다. 외형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내면에 잠재된 의식을 이미지화 시키는 걸 말한다. 탈을 쓰고 바라보는 세계는 바로 진실을 말 할 수 있는 세계를 말한다. 하지만 탈을 벗으면 의젓하고 올바른 채 하는 위선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내면을 잘 알 수가 없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오랜 전통 마당극인 안동 하회탈춤은 양반을 비웃고 풍자하는 가면극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의 현실은 거꾸로 그 탈 속에 숨어서 어떻게 하면 속일 수 있을까, 위장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솔깃하고 그럴싸하기도 하고, 누군가 가면의 껍데기를 벗기면 매도하여 단번에 날려버린다. 그 무리는 떼지어 다니는 사냥꾼처럼 목표물이 보이면 여지없이 총을 겨누고 잡힌 대상을 난도질하며 몰이꾼의 두목에게 최고의 충성을 하는 냥 의기양양해 하며 정국의 주도권자로 떠올랐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끄떡도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정책을 펴던 정부가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소통의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참’일지라도 아직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신석정의 시처럼 껍데기는 가고, 탈은 벗어 던지고 말간 민낯으로 서로에게 환하게 웃을 날이 다시 돌아올까. 아니면 폭설이 내려 더러운 것, 잘못된 것, 모두 묻어버리고 파릇파릇한 새싹으로 돋아나는 새날을 기다려 볼까.


김현탁 한국현대문학연구소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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