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 좀 어두운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술에 취한 듯한 어떤 중년 남자가 가로등 밑에서 뭘 열심히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뭘 찾으세요?"라고 물었더니, 열쇠를 찾는다며 도와달란다. 워낙 딱해 보여 나도 가로등 밑을 한참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여기서 잃어버린 게 확실해요?"라고 물었더니, 나오는 답이 기가 막히다. "저쪽에서 잃어버린 것 같긴 한데 거긴 가로등이 없잖아요."

내 이야기처럼 각색을 하긴 했지만, 오스트리아의 파울 바츨라비크라는 학자가 만든 우화다. 어떤 사회적 문제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오는 어리석은 해법을 비유하기에 적합해 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애를 쓰긴 하지만 성공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우리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이 가로등 우화를 잘 압축해준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간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에 대해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도권 내에서만 답을 찾는 것을 비판해 왔다.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감히 전문가들을 비판해도 되는 것인가? 물론 ‘괜찮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상식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 주장은 간단하다. 수도권 집중의 문제를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그걸 악화시키면서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의 해법을 아무리 찾아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마강래가 최근 출간한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 우리는 왜 부동산 때문에 좌절하는가’를 읽고 반가웠다. 나처럼 생각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것도 반가웠지만 그는 나의 상식 수준의 주장을 넘어서 실증적인 증거들을 제시해가면서 역설하는 ‘전문가 포스’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 어찌 환호할 일이 아니랴.

마강래는 2020년 8월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집값 폭등의 원인이 수도권 집중 때문이며, 국회를 이전하는 정도로 서울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서울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따라서 지방에도 서울과 ‘맞짱’ 뜰 강력한 대도시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흥미롭거니와 비극적인 건 이 당연한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고 안타까워 한다. "역시 교수님들은 뜬구름만..." "연관성 떨어지는 문제들로 사회문제를 하나로 엮지 말라." "쓸데없는 이야기로 서울 집값 잡는 데 도움 안 되는 이야기만 하시네요. 정확한 방법 제시가 필요합니다."

이 댓글을 쓴 사람들이 무지하거나 무식해서 이런 말을 한 건 아닐 게다. 이들은 ‘단기 대책’ ‘중기 대책‘ ’장기 대책‘ 등과 같은 시간적 감각을 갖고 한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과 ‘맞짱’ 뜰 강력한 대도시를 키우는 건 장기 대책에 속하는 것인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자는 판에 왜 그런 한가한 말을 하느냐는 항변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그런 생각이 바로 가로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밑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으려는 취객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부동산은 심리다. 이 말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게다. 그렇다면 ‘신호’를 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데에도 동의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데도 정부의 중대 발표 하나에 부동산 시장이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우리는 수없이 경험해오지 않았던가.

문재인 정권은 그간 어떤 신호를 주었던가? 수도권 집값 폭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신호만 열심히 주었다. 문 정권은 집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내 일자리 정책에서부터 수도권 신도시·광역교통망 정책에 이르기까지 수도권 집중의 가속화라는 신호만 보내왔다. 그 신호를 감지한 청년들이 먼저 움직이는 바람에 지방에선 청년들의 ‘서울행’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수도권 신도시·광역교통망 정책은 집값 폭등을 막으려고 취한 조치가 아니냐는 반론은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는 취객의 헛소리와 다를 바 없다. 문 정권이 그간 내놓은 26번의 부동산 대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그것 역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었다. 마강래의 책에 집값 폭등의 원인 분석과 함께 해법이 잘 제시돼 있으니 꼭 한번 읽어보실 걸 권하고 싶다.

이 책에 ‘옥의 티’가 있다는 건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마강래는 "부동산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운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나 없었다"며 이런 이유를 제시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택 공급을 축소했고, 수요를 부양했다. 정책의 본격적인 효과는 박근혜 정부 4년차인 2016년부터 나타났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에 정권을 잡았다."

이 주장에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며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증가하면 집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지 몰랐다. 주택이 부족한데도, ‘공급은 충분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의 힘도 과소평가했다. 무엇보다도 대도시로 인구가 빠르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운이 없는 게 아니라 무능했던 거다. 그리고 그 무능의 정체가 운동권 대학생 수준의 ‘도그마’에 사로잡힌 오만한 고집이었기 때문에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 총체적 분석을 제시하고자 했던 마강래의 선의는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 책의 다른 두 군데에서도 문 정권이 "지지리도 운이 없다"는 식의 말씀을 하셔서 ‘옥의 티’로 거론한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문 정권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집값 폭등은 ‘서울공화국’의 저주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 정권은 ‘서울공화국’을 넘어서기 위한 이렇다 할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천하지 않은 정권이 아니었던가. 바로 이 점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있어야 집값 폭등이라는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문 정권이 일으킨 2년간의 검찰개혁 논란에 바쳐진 국민적 열정과 에너지의 반의 반만이라도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일에 돌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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