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평균 예순이면 죽었다. 오늘날엔 아흔까지 산다. 연금과 사회보조금을 30년이나 더 받아먹는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연금과 사회보조금은 젊은이들이 지불한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수많은 노인을 먹여 살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 가보면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죽지 않고 버티는 노인들이다."

이탈리아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2011년에 발표한 ‘늙은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란 글에 나오는 말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살벌하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가장 손쉬운 방법은 명약관화하다. 젊은이들이 자식 없는 노인들을 죽이는 것이다....노인들이 반발해서 숨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노인 사냥이 시작된다. 밀고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이 글은 지난해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에코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이라는 에세이집에 수록되었다. 세간의 추측이긴 하지만,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천재 감독 황동혁은 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던 것 같다. 그는 지난 4월 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방송콘텐츠 마켓 ‘MIPTV’ 행사에 참석해 ‘오징어게임2’ 이전에 제작할 것으로 보이는 차기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 말이다.

"새 작품으로 ‘노인 죽이기 클럽(Killing Old People Club·가제)’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오징어게임’보다 더 폭력적인 내용이 될 겁니다....이 작품이 공개된 뒤에 나는 아마도 노인들을 피해 다녀야 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노인들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닌가. 이는 그가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한 이른바 ‘세대전쟁론’을 수용하겠다는 걸 시사한 걸까? ‘세대전쟁론’이란 무엇인가? 미국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가 1996년에 내놓은 다음 주장이 그 핵심을 잘 말해주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계급전쟁은 빈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젊은이와 노인의 싸움으로 다시금 정의될 것이다."

유럽에선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젊은이 3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부모 세대에게 제공되는 보조금이 지나치게 많다며 시위를 벌인 이래로 수많은 세대전투가 벌어졌다. 프랑스 경제학자 베르나드 스피츠는 ‘세대 간의 전쟁(2009)’에서 "다수 선진국의 젊은이들은 노년층의 인질극에 사로잡혀 있다"며 "프랑스 젊은이들 그리고 아마도 서울의 젊은이들에게 예정된 미래는 간단히 말해서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무장강도 행위이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학자 로렌스 코틀리코프도 ‘세대 충돌(2012)’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를 감추려는 거짓말에 있어선 행정부는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이 똑같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각 세대는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의 상당 부분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다. 매년 아니 수십년동안 젊은이들로부터 돈을 빨아내 노인들에게 거금을 안겨주면서, 미국 행정부는 사실상 거대한 폰지 사기(Ponzi scheme: 피라미드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과연 그런가? 그래서 에세이나 드라마의 세계에서 ‘노인 죽이기 클럽’이 등장하는 건가? 과장의 혐의는 제기할 수 있을망정 세대전쟁론이 무조건 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부 국가의 일부 사례들은 설득력이 꽤 높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과도한 일반화와 더불어 감정적 선동의 부정적 효과다.

나는 황동혁이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회학자 전상진의 ‘세대 게임: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2018)’라는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이 책은 세대전쟁론에 대한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으로 더 기울지라도 상충되는 두 관점 사이에서 최소한의 균형을 취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이다.

한국 청년들의 실제 삶에서 그들이 가장 분노해야 할 대상은 일반적인 노인들이 아니라 국가적 정책 결정에 책임이 있는 노인들일 게다. 그들에게 가장 큰 부담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내집 마련의 문제를 살펴보자. 지난 4월 6일 서울시가 ‘2021 서울 서베이(도시정책지표조사)’를 활용해 서울에 거주하는 2030세대의 삶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도시로 이주한 전출 인구 56만7366명 가운데 2030세대가 27만1468명(47.8%)으로 2명 중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대부분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서울에서 쫓겨난 것인데, 청년들에게 그런 고통을 준 범인은 노인들이 아니다. 엉터리 부동산 정책을 신앙으로 떠받들면서 고집을 피운 문재인 정권이다. 그러니 결코 ‘노인 죽이기 클럽’을 만들 일은 아니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 문재인을 비롯해 노인으로 부를 수 있는 고위 인사들을 지목해 ‘노인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악의 노인빈곤율과 최고의 노인자살율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라는 걸 상기하는 게 좋겠다. 즉, 세대 이전에 계급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4월 13일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KB부동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문 정권 들어 서울과 6개 지방 광역시 중형 아파트 평균 매매 값이 10억 원 넘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5월 서울과 지방 광역시 중형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각각 8억326만 원, 3억3천608만 원으로 차이는 4억6천718만 원이었지만, 지난달 기준 서울은 16억1천59만 원, 6개 광역시는 6억441만 원으로 평균매매가격 격차는 10억618만원으로 더 확대됐다는 것이다.

지방에선 비교적 싼값에 거주할 수 있게 됐으니 문 정권에 감사드려야 할까? 북한에서 평양은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가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던데, 이제 남한의 서울도 그 지위에 올랐다고 반겨야 하나?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일자리 때문에 자녀를 서울로 보냈거나 보내야 할 지방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려울 게다. 이 또한 지지리 못난 문 정권을 탓해야지 ‘노인 죽이기 클럽’을 만들 일은 아니라는 걸 시사해준다고 볼 수 있겠다. 굳이 만들겠다면, 노인의 계급을 구분해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에겐 면책특권이라도 주는 게 공정하지 않을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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