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생존본능을 보여주는 현상 중에 ‘수관기피’라는 현상이 있다. 이것은 숲에 있는 나무들이 자라면서 서로 닿지 않으려고 기피(忌避)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식물학자들은 아직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론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빽빽한 나무숲에서 자라는 나무나 식물들은 자신들의 성장에 방해받지 않으려는 성질을 이처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숲의 식물들이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자라야만 병충해나 기타 성장에 해로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 거리두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천문우주학에서도 발견된다. 최초의 우주 발생설을 천문우주학에서는 빅뱅(Big Bang)이라고 부른다. 빅뱅 이후 최초의 우주는 마치 원자와 전자가 결합하기 전의 상태인 초고온 초고밀도의 원시 원자의 안개와 같은 상태로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 공간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물질들이 주변의 물질을 중력을 통해 끌어당겨 서로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결국, 우주 공간에는 작고 큰 별들의 군집인 은하와 은하들의 무리인 은하단이 형성되어 지금의 우주를 형성했다. 그러니까 우주 내에서 별과 별들이 서로를 너무 좋아하는 일종의 플라스마 상태로 계속 존재했더라면 지금의 우주의 형태는 발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은하가 생성되고 은하들이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므로 태양계를 비롯하여 지금의 지구환경이 생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은하와 은하 사이의 수억 광년에서 수백억 광년의 엄청난 거리를 유지해야만 지금의 우리의 삶의 환경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소위 우주 내의 사회적 거리가 일종의 수관기피였던 셈이다.

기독교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수관기피가 존재했다. 기독교 역사에 남겨진 신앙의 스승 중에 사막교부(desert father)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속의 불편함을 피하여 스스로 광야나 사막에서 하나님과의 독대를 경험했다. 그들은 힘든 노동을 하며 일의 신성함을 배웠고 작은 양으로 식사하며 깊은 영성을 체험했다. 이른바 수관기피적 물러남을 통해 이룩한 신앙 정신이 현대 기독교의 중요한 영성이 된 것이다. 최근 피정이라 불리는 의도적 물러남이나 영성적 물러남을 경험하기 위하여 스스로 세속을 잠시 피하는 행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경험은 일상의 분주함과 지나치게 밀착된 다양한 관계로부터 잠시 떠나 자신을 고독에 내어 맡기며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는 창조적 삶을 위한 복원행위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르는 길어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우리의 일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과 함께 일상의 회복을 앞두고 오히려 코로나 이후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염려가 감지되고 있다. 과연 무너진 일상이 바르게 회복될 수 있을까에 대한 또 다른 걱정 때문이다. 이미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누적된 후유증이 생활 깊숙이 침투해 들어 왔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일상의 가능성을 두려워하게 되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원치 않는 비자발적 거리 두기와 관계의 무자비한 단절이 남긴 상처가 초래한 비관적 전망이다. 우리는 그동안 완전하게 보상받을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고, 그에 따르는 큰 상처 또한 경험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아픈 기억이라는 상흔에 매달려 자기연민에 묶여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아픔과 무기력을 재빠르게 떨쳐내고 새로운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연대에 힘을 모아야 하겠다.

성서의 전도서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 백신 접종률이 높아가고, 그에 따르는 긍정적 지표들이 회복의 때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아직 마음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팬데믹으로 빼앗긴 우리의 일상의 들에 따뜻한 봄이 올 수 있도록 먼저 전향적 마음가짐을 회복하는 것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수관기피, 즉 자연이 스스로 거리를 두고 냉정한 무관심을 유지할 때 더 왕성하고 건강한 생장의 기회로 이용하듯이 우리가 경험한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경험한 그것대로 수용하고, 더 멀리 뛰기 위한 창조성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창발 되도록 긍정의 에너지를 모아야 하겠다.

차종관 목사(세움교회/ 성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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