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좌석에서 강제추행을 당한 여군 부사관이 안타깝게도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위계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사건의 연장선 상에서 가해자에 대해서만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을 대안처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꼬리 자르기’이다 왜냐면 바로 그 동일 피해자를 상대로 1년 전에도 똑같은 술좌석 강제추행의 피해가 벌어졌었고 그때도 이 피해여성은 정해진 절차대로 문제제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만일 1년 전 처음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제대로 징계절차가 진행되었어도 동일 성격의 사건이 이번처럼 또 발생했을까? 나아가 왜 본인에게만 이런 이일 계속 일어나는지를 한탄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매우 희한한 일이다.

최근 우리 학교에서도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였다. 즉시 기관장에게 사건의 조사결과를 보고하였고 일부 심각한 행위에 대하여서는 형사사법기관에 신고하였다. 그리고는 피해자와 보호자에게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고충상담이 법률조력과 함께 제공 중이다. 이렇게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는 일종의 매뉴얼의 형태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왜 해당 여군에 대한 1년 전 성추행 사건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하라고 만들어진 기관이 바로 양성평등센터이기에 1년 전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센터장의 대응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성평등센터 포함 인권나래센터 및 국방헬프콜은 성폭력 피해 포함 다양한 군부대 내 인권침해 사례를 처리해야 한다. 피해자의 고충을 접수하고 피해자에게 심리지원을 해주며, 그래서 사건의 초기단계에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도록 기획되어 있다. 다시 말해 강력한 조직문화 속에서 유일하게 피해자의 편에서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해주며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어 차후 조직이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대하면서 과연 이 같은 피해자 지원조직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심이 든다. 극단적 선택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내담자에게 무심하게 담당직원이 아니니 차후 전화를 하라고 운운하거나, 자신의 문제이니 스스로 잘 알아서 의사결정 하라는 식의 면담태도는 사실 심리상담가의 역할 기준으로 보자면 그저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이럴 줄 알았다. 물론 군대만은 아니지만 배타적이며 경직된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극단적 선택이 연이어 발생하자 특히 국방부와 법무부는 몇 년 전 상담기능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민간에서 주로 육성되어 온 전문인력을 전국 기관으로 단기간에 배치하기 어렵게 되자, 다양한 단기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상담분야에 배치할 인력을 급조 육성하였다. 문제는 한 명의 훌륭한 상담가를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몇 백 시간의 기계적인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란 점이다. 상담분야의 전문인력이라 함은 기술만을 익히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윤리를 두루 갖추어야 하는데, 이는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수년에 걸친 수련과 연수를 통해 체득한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숙련도와 올바른 의사결정능력만이 남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는 상담가의 전문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심리학을 사십년 정도 공부한 필자 역시 절박한 위기에 내몰린 피해자의 인생에 도움을 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몇 주 단기 교육으로 성폭력 피해상담을 하게 한다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번 사건은 바로 이 같은 수없이 많은 판단착오가 불러온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인명피해이다. 부디 이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샅샅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제발 사람들을 위기로부터 구제해야 하는 최전방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올바르게 육성된 전문인력이 투입되길 기대해본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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