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굴욕은 상대의 무릎을 꺾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 굴욕이 다가설 때 당하는 이들의 방법은 달라진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참고 잠깐의 굴욕을 뒤로 하며 앞날을 보든지, 아니면 결국 무릎을 꿇어 만신창이로 남든지, 이것은 철저히 당사자의 선택이나 능력에 달려있다. 물론 전자에는 참고 지내며 키가 클 수 있는 배경이나 성숙된 내공, 그리고 때 되는 대로 쌓아둔 실력들이 수반돼야 한다. 이에 따르는 웬만한 수의 동반자, 즉 무리까지 동반되면 땡큐. 100일을 준비하는 윤석열 정권과 리스크에 묶여 연일 이말 저말로 철옹성을 쌓아가는 이재명 의원, 그리고 젊음을 무기로 청춘답게 어제의 신문칼럼까지 꼼꼼히 챙겨 반격에 나서는 이준석 대표도 이 모든 굴욕의 일지에서 가깝다. 분명한 것은 최근 벌어지는 정치권 굴욕의 현장에 모욕이라는 양념까지 곁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약식 기자회견에서 인사 문제 지적에 얘기한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말한 것에 "나와서는 안되는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모두의 기억으로도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비판한 것은 징계 이후 처음이고 보수 언론에서 이를 언급했다. 굴욕까지는 아니라도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참을 인(忍)자를 언급하면서다. 윤 대통령의 조심스럽지 못한 발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쓴 해당 매체의 필자가 "정치를 오래 취재했지만 여당 대변인이 자기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처음 봤다"고 말한 것이 이렇게 여당 대표의 지적질로 밖으로 꺼내진 것도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다. 차라리 시대가 바뀌었는데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당내에 남아 항의를 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물론 이런 여당 대변인이 객관적인 시각만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역대 대변인들도 사석에선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공개적인 대통령 비판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는 입장과 맥락을 같이 해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 대표의 눈에는 "눈을 의심하게 하는 증언"이었던게 본인의 굴욕을 자초했다. 아마도 본인이 느끼기에는 넘어져 진흙에 빠진 지금의 처지에 마치 한번 더 밟은 격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어진 ‘유감’ 이란 말은 이 모든 것에 대한 결론이나 요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상 이 모든 과정은 죄다 드러난 셈이다. 대통령이 이준석 대표에 대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는 표현을 쓴 게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문자를 보낸 장면으로 국민들 눈에 확인됐고 이 대표도 양머리를 앞으로 확실한 의중을 대통령에게 비쳤다. 어쩌면 더 비겁하고 민망스런 얘기들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나중 일이다.

그래서인지 후폭풍이 적지 않을 전망이라는 권성동 의원 말 그대로 지금의 국민의힘 현황판은 오히려 클리어해졌다. 이 대표가 전국을 돌며 청춘 집합을 강행한 것 역시 나이에 비해 일찍 뛰어든 정치판에 굴러다니던 구습이다. 나름의 세를 과시하면서 이제는 여당이고 야당이고 꼰대들의 시대는 한물 갔다는 뜻으로 읽히고 있지만 과거부터 그 꼰대들의 지혜는 여전히 정치판에 실존해 있다. 따지고 보면 대선부터 삐걱대던 사이여서 늘 불안해 보였던 대통령과 당대표였다. 이 대표가 어쩌다 여당 후보가 된 윤 대통령을 인정하기 싫어한 몇몇 장면들이 포착됐고 그러다 이 대표가 갑자기 없어지면 윤 대통령이 끌어와 사진 찍고 하는 그림들이 국민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차라리 적나라한 본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기 전에 까놓고 말을 했으면 지금의 이 굴욕들은 없었을 일이다. 굴욕적이지만 참고 앞날을 도모한 승자와 무릎이 꺾인 패자만 남아 있다.

한때 서슬퍼런 입들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 야단치던 야당 사람들의 굴욕장면도 마찬가지다. 마치 설욕에서 굴욕으로 향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얼마전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한 내용에 한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허접한 실력만 드러냈고 우리는 준비도 없이 가서 국무위원들을 띄워줬다"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설욕을 별러왔지만, 사실상 대정부 질문에선 헛스윙만 반복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에서다. 한동훈 법무장관에 첫 질문자로 전임 법무장관이던 박범계 의원을 투입한 것부터 실수였다. 과거 ‘3M’ㆍ‘이모’ 사건 등 한 장관 인사청문회 때의 굴욕을 씻어내기 위한 고육책으로 선택한 인물마저 더한 굴욕으로 남아 있다. 웬만해서 말려들지 않는 한 장관을 너무 얕잡아 본 죄 크다. 보수에 이런 인물이 숨어있었다는 사실만 각인시켜준 그림들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상대방을 악으로만 규정해 놓은 탓도 크다.

이런 굴욕은 정치인 이외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보기에 화려한 배우 김성령이나 윤여정도 살면서 여러 굴욕을 당했다. 이들은 다른 배우가 거절한 역이나 두 장면 나오는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다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름만 들어도아는 큰 키의 소설가는 헌책방에서 자신이 인사말을 쓰고 서명한 첫 책을 발견하는 굴욕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굴욕은 그렇게 모양만 달리할 뿐 피해 가기가 어려운 증거다. 단지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지 여부는 늘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람이 아닌 국민의힘까지 간판이 큰 여야 정당의 기구들도 비상대책위원회에 관한 굴욕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2년 후 총선에서 당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르는 정당도 있다. 그럼에도 눈앞의 당권 내전에 여념이 없다. 굴욕에서 벗어나는 간단한 방법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 에서의 탈피다. 기다리고 참으며 다음 시간을 생각하는 때를 갖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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