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년전부터 '나눔'으로 지역사회에 영향
청계산 숲 등산로·진입로 정비 잘돼있어
가을 산행하기 좋아 주말 나들이에 제격

칠장사는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다. 칠장사가 위치한 칠장산은 해발 492m로 나지막하지만 한남금북정맥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산이다. 한남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속리산 청왕봉까지 이르는 산줄기를 이른다.

칠장사 항공사진 전경
칠장사 항공사진.

많은 전통사찰이 그렇듯 칠장사도 창건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때는 그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있던 때여서 칠장사를 창건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견이 있다. 이후 고려시대인 1014년 혜소국사에 의하여 크게 중수되었으며, 국사가 입적한지 6년 후인 1060년 왕명으로 혜소국사비와 구층사리탑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혜소국사비만이 남아있고 구층사리탑은 남아 있지 않다.

혜소국사의 속명은 이정현이고 972년 안성에서 태어나 10세에 광교사에서 충회에게 구법하였으며, 17세에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997년에 미륵사의 5교대선(五敎大選)에 뽑혔으며, 999년에 대사(大師)가 되었고, 1054년 83세에 입적하였다. 혜소국사는 평소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지어 공양을 했고, 칠장사에서는 이를 이어받아 지금도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을 지속하고 있다.

혜소국사비
혜소국사비.

 

칠장사는 규모에 비하여 문화재가 많다. 국가지정문화재만 하더라도 국보 오불회괘불탱과 보물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삼불회괘불탱, 혜소국사비,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대웅전 등 6점이다. 경기도지정문화재는 당간, 소조사천왕상, 죽림리 삼층석탑, 대웅전 목조석가삼존불좌상,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 일괄, 범종, 대웅전 영산회상도, 원통전 등이며 또한 칠장사 전체가 경기도문화재자료이다.

이곳에는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역조실록을 보관했었다. 고려의 역조실록은 몽고와 같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피해 남쪽인 가야산 해인사에 처음 보관하였는데, 왜구가 침입함에 따라 점점 북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처음 경북 선산의 득익사로 옮긴 후 다시 충주 개천사로 옮겼다가 1383년 죽산 칠장사로 옮겼다. 1390년에는 서해를 통해 죽산까지 왜구들이 빈번히 출몰하니 다시 충주 개천사로 옮겼다가 세종 때에 고려사를 편찬하기 위하여 모두 서울로 가져갔다. 그 덕분에 지금의 고려사를 알 수 있으니 그 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623년 인목왕후는 광해군에 의하여 희생된 아버지 김제남과 8세의 어린나이에 강화부사 정항에 의하여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아들 영창대군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칠장사를 원당으로 삼고 기도하였다. 노년이 되어 과거를 돌이키며 눈물로 한자 한자 써내려간 인목왕후어필칠언시는 칠장사에 있지만 금광명최승왕경은 현재 동국대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칠장사 철당간
칠장사 철당간

칠장사 입구에는 철당간이 지키고 있다. 당간은 보통 나무로 되어 있어 세월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고 당간을 지지하는 당간지주만 남아 있으나, 칠장사 당간은 쇠로 되어 있어 아직도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원래는 28마디였으나 지금은 14마디 밖에 남아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철당간이 남아 있는 곳은 청주의 용두사지와 계룡산 갑사, 그리고 칠장사 세 군데이다.

이곳 칠장사는 재미있는 설화가 많이 남아 있는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궁예가 어릴 적 이곳에 살면서 활연습을 했다고 한다. 궁예는 통일신라 말기 신라 47대 헌안왕의 아들로 태어난 궁예는 외가에서 5월 5일에 태어났는데 천문관이 ‘오’자가 거듭된 중오(重五)일에 태어나 불길하다고 하여, 왕이 죽이라고 지시하였다. 아기를 포대기 속에서 꺼내어 누각 밑으로 던질 때 유모가 몰래 받다가 손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었다. 이후 다른 곳으로 도망가서 살던 중 어릴 때 유모에게서 자신이 왕족이란 사실을 듣고 세달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세달사는 영월군 영월읍 흥교리에 있는 사찰이라고 알려져 있다. 성년이 된 891년 죽주(지금의 안성시 죽산면)의 초적 기훤에게 의탁하였으나 좋은 대접을 해 주지 않자 이듬해 그의 부하인 원회ㆍ신훤 등과 결탁하여 원주의 양길에게 간 뒤 승승장구하여 결국은 태봉국의 왕이 되었다. 삼국사기 등에는 성인인 된 후 죽주에 온 기록만 남아 있는데 이곳 칠장사의 설화에는 어릴 적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기록과는 좀 맞지 않는 면이 있지만 설화란 것은 항상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므로 참고하길 바란다. 그래서 안성시 삼죽면 국사암에는 삼죽기솔리 국사암 삼존불이 있는데 일명 궁예미륵이라고 하고 지금도 궁예를 미륵으로 모시고 있다.

 

 

칠장사 우물.
칠장사 우물.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이곳에 계실 때 인근에 있던 도적이 칠장사에 와서 샘물을 마시려고 보니 황금 바가지여서 얼른 숨겨 소굴로 가져가니 일반 바가지로 변해있었다. 도적들은 똑같은 일을 차례로 모두 겪자 비로소 이것이 혜소국사의 신통력인걸 알고 국사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로 교화 되었으며 이들은 일곱 나한이 되어 지금도 칠장사를 지켜주고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등淸正) 일행이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가는 도중 칠장사에 와서 소란을 떨자 노승이 나타나 꾸짖었다고 한다. 이때 화가 난 가토오는 노승을 칼로 내리쳐 죽였는데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피를 흘리며 두 동강이 났다고 한다. 이에 겁을 먹은 가토 일행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갔는데 혜소국사비에 남겨진 부러진 흔적은 그 때문이라고 한다.

나한전
나한전

조선 후기 천안에 살던 박문수가 33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 길에 칠장사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어머님의 당부대로 나한전에 유과를 올리고 불공을 드린 후 잠을 자는데 꿈에 나한이 나타나 과거시험의 문제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한은 총 8구의 답안 중 7구를 알려주고 나머지 한 구는 알려주지 않았다. 다음날 박문수는 과거시험 보러 가는 내내 꿈속에서 가르쳐준 글과 마지막 시구를 생각하며 한양으로 갔다. 시험에는 꿈에서 가르쳐준 것 그대로 시제(詩題)가 나왔고 당연히 장원급제를 하였는데 그것이 유명한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 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박문수는 장원급제는 하지 못하고 증광문과 병과 16위로 급제를 하였으며 당시 천안에 살고 있던 것이 아니라 서울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쨌든 설화이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칠장사에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지금도 입시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유과나 사탕을 올리고 합격을 바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어사박문수 합격다리
어사박문수 합격다리

또 조선 명종 때의 임꺽정이 스승으로 모셨던 갖바치 스님인 병해대사가 머물렀던 사찰로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기재잡기 등 고문헌에는 임꺽정과 관련하여 ‘양주 백정이다’, ‘황해도 구월산에 은거하였다’, ‘임꺽정을 잡았는데 알고 보니 그의 형인 가도치였다’ 등 단편적인 기록이 있을 뿐 자세한 기록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임꺽정 관련 내용은 벽초 홍명희가 1928∼1939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임꺽정’에 있는 내용이다. 갖바치는 가죽신을 만드는 천민 출신으로 칠장사에 은둔해 있으면서 수행을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생불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일명 꺽정불
일명 꺽정불

황해도 구월산에 있던 임꺽정이 안성 관아에 잡혀있는 막내 길막봉이를 구출하기 위하여 모사꾼 서림을 비롯한 다른 여섯 명의 도적과 함께 안성에 온 김에 평소 스승으로 모시던 칠장사 병해스님을 찾아 왔으나 스님께서는 입적한지 42일이 지난 후였다. 스님의 영전에서 각자 팔뚝에 피를 내어 7인의 의형제를 맺었다. 임꺽정 무리들은 의형제를 맺기 위하여 스님이 살아계실 때 목불을 조성하려고 보관한 나무에, 베 3필을 주고 불상을 깎게 하여 칠장사에 모셨는데 이것이 바로 ‘꺽정불’이다. 지금도 칠장사에는 꺽정불이라고 불리는 목불이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데 이 불상의 바닥면에는 삼베에 ‘봉안임거정(奉安林巨正)’이라고 쓴 글이 붙어 있다. 2008년 충북대 목재문화연구소에서 이 불상에 대한 연륜연대 측정 결과 임꺽정이 활동하던 시대와 비슷한 1540년 ±50년으로 밝혀져 꺽정불이 한층 진실로 다가왔다.

풍요로운 들꽃이 한가득인 이 가을날, 수능이나 시험을 앞둔 사람은 나눔과 베품의 사찰인 칠장사에 가서 옛날이야기를 들어보고 과거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홍원의 안성맞춤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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